쓸데 있는? 잡학

촛불과 피울음

작성자
오상윤
작성일
2017-10-28 14:16
조회
324
오늘 촛불혁명 1주년이다.

 



 

촛불은 언제까지 타올라야 할까..

 

문득

이땅에 피울음 있다. 라는 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어제 국정감사장에 등장한

고영주라는 사람이 있는데

mbc라는 공영방송국을 관장하는 방문진 이사장이란다.

 

문재인대통령을 공산주의자라고 공공연히 주창하고

국감장에서도 여전히 그 주장을 펼쳐 나간다.

 

영화 변호인에서 노무현 대통령 역할로 열연하던 송강호씨가

피고인의 고문흔적을 보며 분노하고 어머니는 피울음을 흘리며 절규한다.

 

당시 담당 검사가 고영주라는 사람인데

그 후 승승장구를 거듭해서 방문진 이사장의 자리에 있다.

 

그 당시 판사였던 사람이 태극기 두르고 우동먹다 망신당한

서석구 변호사이다.

 

그들을 바라보는 당시 부림사건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은 피울음을 멈출 수 있었을까.

 

 

촛불혁명 1주년인 2017. 10. 28

뉴스에서 전해지는 한마디

 

이명박의 국정원장이었던 원세훈은

“원세훈 “법 지키며 일할 거면 국정원 왜 필요” 라고 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032&aid=0002828114

 

그동안 국정원에 의해 일자리를 잃고 고문당하고 무고하게 징역살고,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당사자와 가족들의 피울음이 멈추어질까.

 

 

국정원 불법댓글 수사를 불법적으로 방해하던 검사들은 승승장구해서 현재 검사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http://news.joins.com/article/22058771

 

불법을 불법으로 보호하고 현재까지도  어깨에 힘줘가며며 떵떵거리며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우아하다.

 

 

반면 서민들은 어떤 대접을 받아 왔을까.

 

최순실 사태에 분노하고 검찰 청사에 포클레인을 몰고 돌진했던40대 남성에게는 특수공용물건손상 등의 혐의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

 

지난 2015년 영업이 끝난 분식점에서동전 2만원과 라면 10개를 훔쳤던 김모씨에겐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70728000058

[출처] 황병헌 판사 >>조윤선 '집행유예', 라면 절도 징역 '3년'|작성자 MAMAZ

 

70억원을 횡령한 죄와 라면 절도 가운데 어떤 죄가 더 중할까.

당연히 수치상으로 볼 때 70억원 횡령이 더 죄가 커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http://www.huffingtonpost.kr/2015/02/17/story_n_6696138.html

 

조모씨는 2010년 전남 보성군의 한 배추밭에서 배추 2포기를 뽑다 마을주민에게 들켰다.

이후 도망치는 과정에서 주변에 나뭇가지로 자신을 붙잡고 있는 마을주민을 수회 때린 혐의(강도상해)로 기소돼 징역 3년6월에 처해졌다.

죄질이 무겁지는 않지만 강도상해죄의 법정형이 7년 이상의 징역이라 법관이 감경을 해도 절반 이하로 낮출수가 없기 때문이다. 징역 3년 6월이면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없다. (중앙일보 2월 9일)




2004년도에 부산에서 특이한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다.



민주투사였던 이철과 민주투사들을 고문했다고 알려진 정형근이 경쟁했고

 

정형근이 당선

 

 

청빈한 민주투사 이철

이철은 1948년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났다. 19604.19혁명이 일어나던 해에 부산중학교에 입학했고 2학년 때 학생회장에 선출될 만큼 리더쉽도 있었다.

 



고교는 아버지 몰래 서울 경기고에 입학원서를 접수시켜 진학했다.

고교 때는 서울 시내의 고교생으로 이루어진 문학서클 '서우회'에 가입하여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작품 토론을 하면서 까뮈나 사르트르 등의 실존주의 작품과 중국 고전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책을 접할 수 있었다.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3수 끝에 1969년 서울대 사회학과에 입학했다.

이후 파란만장한 삶이 시작된다. 693선 개헌에 맞서 전국학생대표위원으로 활동하며 학생운동 전면에 나섰고, 이 때문에 체포돼 제적처분을 받았다.

 

또 군에 강제징집(1)72년 병장으로 제대했다.74년에는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기에 이른다.

75년 형집행 정지로 감옥에서 풀려난 뒤에는 취직이 안돼 택시기사, 공사장 막노동, 할부책 외판원, 야채행상 그리고 칼국수 장사 등을 전전해야만 했다.

 

80년 짧았던 '서울의 봄' 동안 복학하나,

 

서울대 '광주사태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으로 활동하다 체포되어 3차 투옥, 3차 제적된다.

이후 1985년 신당(당시 신민당) 돌풍의 주역으로 '돌아온 사형수'란 구호를 내세워 서울 성북구에서 36세에 국회의원에 당선된다.

가난한 공안 검사의 생활이 정 의원에게 금배지를 달아주었다면, 이 전 의원에겐 목숨을 건 반독재 투쟁이 금배지를 갖게 하였던 셈이다.

그런데 이제 달라졌다. 과거에는 서로 쫓고쫓기다가 둘 다 금배지를 달았으나,

이제는 금배지 하나를 놓고 둘이 진검승부를 해야하는 것.

 

그리고 그들의 싸움은 예전처럼 정형근과 이철이라는 개인만의 싸움은 아닐 듯하다. 그들의 대결은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자존심을 건 대리전이기 때문이다./이균성기자

 

 



 

박정희 정권에 의해 조작된 민청학련 사건 관련 글 링크

http://blog.ohmynews.com/kimsamwoong/548188

 

이철 전의원 부인 전명옥씨 낙선일기

http://c.hani.co.kr/hantoma/1349749

이 일기 속에 부인 전명옥씨의 피울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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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과 의혹[편집] - 위키백과  -정형근



박종철 사건 관여 논란[편집]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에 관련되었다는 의혹이 있다.[2] 오마이뉴스의 취재진들에 의하면 '정형근 의원이 박종철 사건에 어느정도 개입했는지 잘 모르[2]'지만, 박종철 사건 은폐를 위한 관계기관대책회의에 실무책임자로 관여했다[2]'는 것이다.

한편 언론인 오연호는 1998년 잡지 월간 말지에 '정형근 의원은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조작의 실무총책'이라는 의혹을 담은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고문 행위[편집]

5공 시절 고문왕으로 이근안이 유명했다면

6공 들어서는 정형근이 자주 입에 오르내렸다.

심진구씨 및 민족민주혁명당 사건 관련자 허영옥씨 등이 정형근이 고문현장에서 고문을 지휘했다는 진술을 한 바 있다.

또한 민족해방애국전선 사건 관련자 양홍관씨는 2004년 12월 14일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정형근으로부터 성기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2001년 1월 30일 검찰은 이른바 '서경원 의원 밀입북 사건'과 관련 당시 야당 총재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씨로 부터 북한 공작금 1만불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최종 결론을 내리면서 과거 검찰 수사 조작되었음을 시인했다.

검찰은 당시 서씨의 진술이 수사 당국의 고문에 의한 허위 자백임을 밝혀냈고 고문을 지휘한 자가 안기부 대공 수사국장이었던 정형근임을 밝혔다.[19]

양홍관은 2004년 12월 13일 낮 KBS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라디오 정보센터 박에스더입니다>에 출연해 정형근 의원을 "막대기를 가지고 제 성기 귀두를 친다든가 이런 식의 고문까지 자행했던 장본인"으로 지목했다.[20]

이에 앞서 양홍관은 이날 오전 SBS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하남신의 SBS 전망대>와의 인터뷰에서도 "안기부에 들어가면 일단 옷을 벗기고, 성기고문까지 하고 손가락에 막대기를 끼우고 돌렸다"고 주장했다.[20]

 

정형근은 고문 혐의로 10건 가까이 피소되었으나 용케 법의 심판을 비켜나갔다.

무려 23차례의 검찰의 소환에 불응하였고, 검찰이 긴급 체포권을 발동해 체포하려 했으나 국회의원 면책권 및 당시 한나라당의 철저한 비호아래 소환이 무산되었다.[19]

 



 

정형근은 부산북구 강서갑에서 국회의원을 3선이나 했다.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사람을 국민이라 하고

정치에 참여하는 사람을 시민이라고 한다.

 

2004년도의 우리나라 시민의식이 만들어낸 풍경이었다.

 

 

10년이 더지난 2004년도의 히스토리지만

 

과거 부림사건의 검사가 현직 방문진 이사장에 있고

 

불법을 자행하는 국정원을 불법적으로 비호했던 검사가 부산지검장에 있으니

 

 

아직도 여전히 진행 중인 비정상의 활개라 보인다.

 

진저리 날 정도로 수북히 쌓인 적폐를 청산하려는데

 

정치보복이라고

중단하라고 벌떼 같이 들고 일어난다.

촛불을 내려놓지 못하고 들고 있어야 하는 시절에 살고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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